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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담겨 있는 눈동자를 마주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 다만, 특별함에 따르는 책임을 질 수 없다. 마음이 깊어지면 바로 떠날 수 있게 늘 떠날 채비를 한다. 나는 겁쟁이니까. 나만 담겨 있는 눈동자를 마주할 수 없다. 내가 겁쟁이라는 걸 들킬 테니까. 마주할 용기도 없으면서 맹목적인 애정을 바란다. 함께 추락할 용기도 없으면서 무너지는 얼굴로 손을 내민다. 사랑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이유를 사실 나는 알고 있다. .•♥ 연정 |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겠지만 오늘 밤은 어떡하나요

殉愛譜 2024.07.19

너는 일생을 사랑하는 걸 취미로 삼은 사람이었다

너는 일생을 사랑하는 걸 취미로 삼은 사람이었다. 본 영화도 읽은 책도 들은 음악도 많지 않았지만 사랑만은 지치지 않고 꾸준히 했다. 어느 날 고통에 못 이긴 듯 네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더이상 사랑하고 싶지 않아. 병이야. 그러나 내가 너의 병이 된 적은 없었다. 너의 병이 나만은 비껴갔다. 나는 이것이 두고두고 서운했다. .•♥ 이희주 | 환상통

殉愛譜 2022.06.07

시체를 사랑해서 묻지 못하는 사제처럼

불가피하게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니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 눈이 너로 인해 번식하고 있으니 불가피하게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오늘은 불가피하게 너를 사랑해서 내 뒤편엔 무시무시한 침묵이 놓일 테지만 너를 사랑해서 오늘은 불가피하다 불가피하게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해서 이 영혼에 처벌 받을지 모르지만 시체를 사랑해서 묻지 못하는 사제처럼 불가능한 영혼을 꿈꾼다 환영에 습격 받은 자로서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니 불가피하게 오늘은 너를 사랑한다 오늘은 몇천 년 전부터 살았던 바람이 내 머리칼을 멀리 데리고 날아갈 것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니 불가피하게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 김경주 | 몽상가 中

殉愛譜 2022.06.07

나는 멀찍이 네가 보이는 이 거리마저 사랑해

날이 예쁘다 웃으며 너울거리는 네 그림자 달과 별과 하늘이 합한들 너만 할까 밤과 빛의 황홀에 취한 눈 어질어질하다 가슴 속 노트에 썼다 지울 말 너. 그래 너, 나는 너를 사랑해. 무리 지어 늘어선 수많은 관계 너와 내가 속한 집단에 사랑은 없는 거야 그렇지 어디 몰래 도망이라도 갈래 묻고 싶다만 손잡고 영영 돌아오지 말자 하고 싶다만 아마 내 평생의 비밀 온 우주를 비해도 모자람이 없을 사람아 나는 멀찍이 네가 보이는 이 거리마저 사랑해 다음번에 다시 만나도 나는 눈동자 너는 복사뼈 그쯤 되겠지 그때에도 나는 너를 바라볼 거야 너는 이해해 줄 거지 그렇지 .•♥ 향돌 | 변이

殉愛譜 2022.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