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내가 쓰는 모든 시들이 유서 같다가 그것들이 모두 연서임을 깨닫는 새벽이 도착한다 음력 6월 9일 오늘은 내가 죽은 날 불면을 건너온 혓바늘 돋은 내 불구의 시를 위로하려는 듯 막힌 골목 끝 '卍'을 대문 높이 걸어놓은 무당집에서 건너오는 징소리 징징징징 딩딩딩딩 내 불면의 뒤란에 핀 백색의 목련꽃은 말한다 아직은 조금 더 실패해도 좋다고 네가 켜든 슬픔 한 덩어리의 시도 시들고 시들면 알뜰히 썩을 운명이라고 크나큰 실패마저도 그렇게 잘 썩어갈 거라고 모든 연서는 죽음과 함께 동봉되어오는 유서라고 외롬이라고 음악이라고 왜 음악은 항상 고장난 심장에도 누군가와 함께 도착하고 이미 죽어버린 자들을 느닷없이 호출하는 것인지 불면으로 지샌 음력 6월 9일 오늘은 또 내가 죽은 날 너무 외로워서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뒷걸음질로 걸어갔다던 어떤 사막의 여행자처럼 불면의 밤을 뒷걸음질로 걸어가는 여자가 사라지는 손금을 들여다본다 발자국을 따라 연서 같은, 유서 같은 시를 쓰고 있는 여자가 도착한다
.•♥ 안현미 | 불멸의 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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